미디어의 이해 : 인간의 확장 - 마샬 맥루한
학교를 졸업하고 갑자기 전자책이라는 IT업계에 들어오게 되면서 전에는 별로 의식하지도 않았던 매체들에 하루종일 붙들어 메이고 있다. 스마트폰, 태블릿pc, web, app, 책, 전자책, 블로그, SNS 등등... 1, 2년 사이 세상을 뜨겁게 달구있고, 어느새 나도 최신 기기도 장만하고 새로 올라오는 IT 기사도 읽고 뭔가 엄청 많은 정보를 접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업계 소식들을 이야기하고 있으면서도 가끔씩은 내가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냥 대충 두리뭉실하게 넘어가고는 있지만, 조금만 진지하게 파고들다보면 어느 하나에 대해서도 자신있게 말할 수가 없다.
그 중에서 우습지만 가장 크리티컬한 부분은 책이 뭔지 모르겠다는 거다. 도대체 책이 뭘까? 사람들이 수백년 동안 봐오던 너무너무 익숙한 물건이지만 점점 더 의심스럽다. 책은 종이에 글자가 적혀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책은 단지 텍스트의 나열을 모아놓은 종이묶음일 뿐일까? 그저 서류 뭉치를 스테이플러로 박았다고 해서 우리는 그것을 책이라 부르지 않는다. 무언가 서류 뭉치와 책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지만 이 지점을 파고들면 파고 들수록 모호하기만 하다. 편집이 책의 본질일까? '에이, 책은 그냥 책이지'라는 결론이나 간행물법에서 뭐라뭐라해놓은 것들도 내가 알고 싶은 내용은 아니다.
그럼 책도 잘 모르겠는데 전자책은 뭔지 알 수 있을까? 전자책은 그냥 단순히 책을 디지털 기기로 옮겨 놓은 것에 불과한 것일까? 내가 작가라면 전자책으로 책을 출판 하는 것과 블로그에 포스팅 하는것에는 무슨차이가 있을까? 스마트폰과 함께 어플리케이션 열풍이 불어닥쳤고, 이제 조금은 객관적으로 돌아보았을 때 컨텐츠가 웹으로 유통되는 것과 앱으로 유통되는 것에는 어떤 본질적인 차이가 있을까? 혹은 별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닐까? 도무지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의문들의 연속이다. 결국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싶은지 궁금해졌다.
나는 전자책 사업을 하는 온라인 광고회사에 다니고 있기에 회사 동료들이 매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을 정말 많이 보아왔다. 하지만 보통의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 있는데, 광고업계 종사자들이 말하는 매체의 제 1정의는 바로 “광고”를 실을 수 있는가 이다. 광고를 실을 수 없는 매체는 매체가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어차피 상관없는 관심영역 밖의 문제일 뿐이다. 이러한 관점 역시 '광고'라는 또 다른 매체의 특성에서 우러나오는 중요한 함의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 전에 매체의 본질적인 특성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고민의 시작을 '매체가 무엇인가'로 잡았다.
'매체에 대한 책'하면 바로 떠오르는 사람이 사실 마샬 맥루한 밖에 없어서 그의 저서 <미디어의 이해: 인간의 확장>을 확 질렀다. 살면서 내가 무언 가에 대해 자발적인 고민을 가지고 책을 집는 일은 자주 있지 않은 일일뿐더러, 그 고민과 정확하게 맞는 책을 찾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다. 그래도 이 책은 나름 제대로 고른 것 같다.
마샬 맥루한은 <미디어의 이해>에서 한방에 모든 것을 깔끔하게 정리해버리는 이론을 정립하지 않았다. 이론의 체계화 보다는 미디어를 바라보는 몇 가지 관점을 제시하고, 미디어를 연구하는 방법과 태도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 한다. 그것을 받아들일지 말지는 이제 독자가 직접 매체를 마주하며 알아서 고민해보라는 식이다. 그래서 이처럼 과학적이지 않고, 우리가 흔히 '이론'이라고 부를 수 있는 형식을 거의 띄지 않는 책을 사회'과학' 전공자들이 과연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가 근거로 언급하는 것들은 가설과 실험이 아니라 예술과 대중문화의 사례가 대부분을 차지했기에, 내 느낌상으로는 거의 미학책에 가까웠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맥루한은 책을 쓰면서 책이라는 형식 자체에도 도전했다. <미디어의 이해>는 2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1부에서는 '미디어가 메시지다.', '뜨거운 미디어, 차가운 미디어'라는 그의 대표적인 명제들이 등장하고 그의 관점과 이론에 대해 설명하며, 2부는 언어, 문자, 종이, 인쇄, 신문, 라디오, 텔리비젼, 영화, 광고, 게임 등 수많은 매체들을 통해 직접적인 현상을 살펴본다. 처음 목차만 봤을 때는 맥루한이 던지는 저 수많은 떡밥들을 보며 빨리 읽고 싶다는 충동에만 휩싸으나, 막상 읽어보면 내가 기대한 내용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들만 가득했다. 이에 대해 맥루한은 자기 책이 신문이나 잡지 같은 ‘모자이크 적인 형식’을 띄고 있다고 말 하는데, 쉽게 설명하면 1부만 읽어서는 무슨 소리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으며 2부까지 다 읽고 난 후 다시 1부를 읽어야 한다는 뜻이란다. ㅎㅎㅎㅎ 나는 그냥 내가 이해 하고 싶은 대로 이해해버렸다. 뭐 어쩌겠는가.^^;;
이제 맥루한이 미디어를 바라보는 방법에 대해 제시한 대표적인 관점들 중 내가 받아들인 몇 가지만 정리해보려 한다.
1. 미디어는 인간의 확장이다.
마샬 맥루한은 <미디어의 이해>에서 '미디어는 인간의 확장'이라 말한다. 바퀴는 발의 확장이고 옷은 피부의 확장이며 주택역시 피부의 더 큰 확장이다. 그는 에너지, 새로운 기술의 도입, 음성 언어, 표음문자, 활자 인쇄 등등 우리를 둘러 싸고 있는 모든 면에서의 매체를 다룬다. 매체는 말 그대로 A와 B를 매개해주는 매개체이며, 따라서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며 세상과 접하는 모든 것이 다 매체가 된다. 새로운 매체가 등장하면 그에 따라 인간의 감각과 신체가 확장 된다. 우리는 어찌보면 당연한 이 사실을 너무 쉽게 잊어 버린다.
2. 모든 미디어는 상대적이다.
우리는 어떤 한 매체에 대해 깊이 들여다 보고 연구하며 그 특성들을 정의 내리려 한다. 하지만 그 특성들은 시대, 공간, 문화에 따라 상대적이며, 그리고 한 매체는 다른 매체와 비교했을 때에만 드러나는 상대적인 속성들을 가질 뿐이다. '책' 처럼 아주 오래된 매체의 경우 그것이 갖는 함의와 사회에 미친 효과는 시대가 흐르며 계속해서 변화해 간다. 그리고 그 매체가 받아들여지는 곳이 어디인지 즉 사회적 문화적 배경과도 깊은 관계를 갖는다. 영상 매체가 전혀 없던 문화권에 영화를 처음 보여주게 되면 우리는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그 들은 전혀 받아들이지 못할 수 있다.
그리고 하나의 매체는 다른 매체들에 강하게 영향을 미치며 또 반대로 영향을 받는다. 새로운 매체가 등장하면 그것이 단순히 독립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매체들과 상호작용을 통해 효과를 발휘하며 인간의 모든 감각 질서들을 재 정립한다. 맥루한은 인간의 감각이 새로운 매체의 등장과 함께 변화한다고 말한다. 인간은 미디어를 통해 세계를 해석하고 변화시켜나가지만, 그 반대로 미디어에 의해 인간의 감각 역시 변화를 겪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신용카드가 생겨나고 사람들의 소비에 대한 감각은 정말 많이 바뀌게 되었다. 현금이라는 유형의 물질에서 숫자에 불과한 신용이라는 무형 자산으로 변화하면서, 이에 적응하지 못하면? 신용불량자가 되는 것이다.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대중 교통을 이용하거나, 지도를 보며 처음 가는 곳을 찾아가는 방법, 궁금하던 키워드를 검색하는 일 등 수많은 변화가 있어왔다. 이는 스마트폰 내부의 기능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중교통, 지도, 포털사이트 등 다른 매체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더 많은 사회적 효과를 창출하였다. 따라서 한가지 미디어에 대해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다른 미디어들의 작용과 변화를 함께 관찰해야 한다.
3. 미디어가 메시지이다.
우리는 흔히 미디어의 형식 보다는 내용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으며, 미디어 그자체는 어떠한 가치판단이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한다. 마치 노벨이 다이너마이트를 개발해 놓고 살상용으로 사용될 줄 몰랐다고 말하는 것 처럼 별로 의미 없는 관점일 뿐이며, 오히려 내용에 주목할 수록 그 미디어가 발휘하는 효과들을 놓치게 된다. 맥루한은 이 미디어가 발휘하는 효과가 메시지, 내용이 주는 효과 보다 더 강력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미디어가 메시지다'라는 말에는 다양한 함의를 가지고 있지만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미디어 속에 들어 있는 것은 다른 미디어의 번역일 뿐이라는 것이다. 영화의 내용은 소설이며 소설의 내용은 문자로 쓰인 것이고 문자는 말, 말은 생각이라는 다른 미디어의 번역이다. 결국 미디어와 분리된 순수한 내용이란 불가능에 가까우며 하나의 미디어는 언제나 다른 미디어를 품고 있을 뿐이다. (맥루한은 이렇게 다른 미디어를 품고 있지 않은 예외적인 미디어로 '생각thought', '전기electricity' 두 가지만을 제시 한다.) 그리고 미디어라는 환경은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개입한다. 하나의 미디어가 새롭게 출현하면 모든 환경이 변화 하고 확장된 인간의 감각은 새로운 질서로 재 정립된다. 즉 미디어는 사회적 차원의 메시지이다.
4. 뜨거운 미디어 차가운 미디어
맥루한의 말하는 뜨거운(HOT) 미디어 / 차가운(COOL) 미디어의 정의를 살펴 보자면. 그 미디어가 내보내는 정보량과 정세도(쉽게 말해 해상도나 퀄리티), 사용자의 참여 여부와 관련이 있다. 뜨거운 미디어는 하나의 감각만을 집중적으로 사용하게 하며 고품질의 정보를 내보낸다. 텔레비젼과 극장을 비교해 보면 극장은 거대한 스크린에서 고화질의 영상을 사용자에게 쏘아 대며 이미 완결된 형태로 제공되어 사용자의 참여 여지는 극히 드물다. 그에 비해 텔레비젼은 저화질의 정보를 제공하나 볼륨을 조절하거나 채널을 돌릴 수 있고, 시청자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가 미디어들을 뜨거운/차가운 미디어로 분류한 것을 잠깐 살펴보자
차가운 / 뜨거운
전화 라디오
말 인쇄
만화 사진
텔레비전 영화
세미나 강의
이 분류만 처음 보게 되면 뭐가 차가운 미디어 인지 뭐가 뜨거운 미디어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역시나 매체는 시대적 문화적 배경에 상대적으로 변화 하기에 맥루한의 분류와 지금은 많이 달라졌을 수 있다. 새로운 매체가 등장하면 그것이 그냥 독립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미디어들이 영향을 미치며 모든 감각 질서들을 재 정립하기 때문이다.맥루한이 말하는 쿨미디어 핫미디어 이론을 이야기 했을 때에 비하면 지금 새롭게 등장한 미디어가 얼마나 많은가. 우리는 맥루한의 태도와 관점을 파악하여 지금의 시대에 새롭게 적용해 보아야 한다.
다시 위의 분류를 살펴보면 나는 맨 처음에 인쇄(책)나 라디오가 뜨거운 미디어였나?라는 의문을 가졌다. 책이나 라디오는 너무도 화려한 현대의 미디어들에 비하면 진짜 저해상도의 속성을 가지지 않나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미디어는 상대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맥루한이 말하고자 한 것은 라디오는 전화에 비해 뜨거운 미디어이며. 책은 말에 비해 상대적으로 뜨거운 미디어라는 것이다.
맥루한이 말하는 차가운 미디어는 우리의 감각을 너무도 강력하기에 참여 시키기에 그 미디어를 즐기며 동시에 다른 활동을 하기가 어렵다. 사용자가 그 미디어에 여러 감각기관들이 빨려들어가기 때문이다. 원래부터 차가운 미디어로 분류되어 있던 전화는 스마트폰이 되며 역대 최고의 차가운 미디어가 되지 않았나 싶다. 손에 잡고 있으면 자꾸만 들여 보게 되고 무언가를 하고 싶게 만드니까. 할 게 없어도 폰을 켜서 바탕 화면만 괜히 이리저리 뒤적거리게 될 정도로 손을 빨아당긴다. 책은 작가의 견고한 관점이 쏘아질 뿐이며, 독자는 모든 정신을 집중해 그것을 파악하고 따라가기 위해 노력해야만 하는 뜨거운 미디어다. 그에 비해 새롭게 등장한 SNS는 말할것도 없이 차가운 미디어이다. 사용자들은 팔로우, RT, 댓글 등을 통해 다양하게 참여할 수 있다. 설령 똑같은 내용(메시지)이 적혀있다해도 그것을 책으로 읽는것과 SNS 혹은 블로그로 읽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맥루한이 말하는 미디어에 대한 '참여'란 어떤 지적인 관심과 참여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감각에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더 집중 되어 있다는 것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
5. 신체의 확장을 넘어서는 인간 중추신경계의 확장.
만화 공각기동대에서는 인간이 자신의 기억을 USB같은 외부 기억장치에 저장해 놓을 수 있는 미래 사회를 그리고 있다. 우리는 보통 내가 '나'라는 정체성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나의 기억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어제 내가 했던 일들과 감정들, 살아온 세월을 내가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기억이 따로 저장되고 타인과 공유될 수 있다면 '나'라는 정체성은 어떻게 보장받을 수 있을까? 나랑 똑같은 기억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와 나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그리고 공각기동대에서는 한술 더 떠 사람들이 자신의 기억들을 아예 웹에 올려버린다. 웹을 통해 모든 사람들이 기억을 공유하게 되고 그에 따라 웹 자체가 거대한 인격체가 되어버리는 세상을 표현한다. 정말 무서운 상상력이었다.
맥루한은 <미디어의 이해>에서 이제 현대사회는 '기계의 시대'에서 '전기의 시대'로 넘어 간다고 말한다. 난 이 전기의 시대를 인터넷으로 이해했다. 맥루한은 TV나 기타 전자기기를 통해 인간들이 접할 수 있는 정보가 한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지구 전체로 확산되었으며, 또 시간적으로 보았을 때 거의 동시간에 전달된다고 말한다. 그동안 우리는 세계화나 지구촌 문화라는 말을 사용하였다.(이제는 너무 익숙해 져서 별로 사용하지도 않지만) 지구촌 시대에는 나와 동 떨어져 있는 세상에 대해서도 우리는 더 깊은 관여를 하게 되며 더이상 나와 분리해 생각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또 미디어를 통한 인간 신체의 확장, 감각의 확장을 넘어서, 사고와 감각기관 그 자체인 중추신경계가 세상으로 확장되어 버린다.
우리는 궁금한 것이 있으면 즉각적으로 웹을 통해 검색하며, 다양한 정보들에 더 많은 참여를 하게 된다. 네이버 백과사전은 거의 내 지식의 외부기억장치처럼 되버렸다. SNS는 지금 현재로서는 참여의 끝판왕 격이다. 나는 언제 부턴가 가상 공간 사이버 스페이스와 현실세계가 마치 증강현실처럼 하나가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페이스북의 세상은 익명의 온라인 네트워크가 아니라 내 현실의 인간관계이다. 수만리 떨어져 있는 친구들의 이야기나 사진들이 페북에 흐르고 있다. 생각과 기억을 공유하고 다양한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참여한다. 언젠가는 공각기동대의 미래가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읽어도 명쾌하게 결론 나는 것은 없다. 모든 미디어는 상대적이며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하면 모든 질서는 재편된다. 그러므로 나는 내 시대에 걸맞게 다시 새롭게 들여다보야 한다. 이제부터 어떻게 소화할지가 중요할듯 하다. 다시 이 글의 맨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책이 무엇일까?, 전자책이 무엇일까?' 와 같은 질문은 크게 의미가 없는 것 같다. 각각의 미디어를 주목하는 것은 오히려 방해가 된다. 맥루한은 '미디어가 무엇인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미디어가 어떻게 하는가'와 같은 그 것이 갖는 효과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미디어의 효과 말이다. 그외에 아직 내가 소화해 내지 못한 맥루한의 수많은 번득이는 통찰력은 언젠가 써먹을 때가 올 것이다. 할 수 있다면ㅋㅋㅋ